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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해동검도는 비약한 발전을 하여 수많은 해동 동호인들이 전국 각 도장에서 수련하고 있다. 현대적 의미의 검도는 무사적 기풍과 건강을 함께 찾고자 하는 수련자들의 작위적 성격으로
규정할 수 있다. 해동검도를 수련하면서 전통문화를 재인식 하는 삶의 태도를 갖게 되고 더불어 건강한 생활을 할 수 있음으로써 사회 경제적 가치는 매우 놓다 하겠다.
(사)한국해동검도협회 연구원에서는 생활 무예로써 해동검도가 우리들 삶의 가치를 얼마나 높여 주는 것인가에 대한 물음에
대하여 철학적, 학문적 저술활동으로 입증하였다. 협회에서는
오늘날 전통을 표방하는 무예의 가치를 매우 심각하게 생각하여 그에 따른 의미를 문화 예술적인 측면에서 찾고자 하였다.
따라서 국악, 서예, 무용, 그림, 도자기 등의 장인들을 끊임없이 만나면서 그들의 고결하고 수준 높은 전통 문화 예술에 대한
가치관을 배울 수 있었다. 이들 장인들 솜씨는 스승과 제자의
몸으로만 전달될 뿐만 아니라 끊임없는 자기 수련으로 깨달음의 경지에 도달해야 한다는 숙명적인 물음에 봉착하게 된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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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훌륭한 스승이 있어도 제자가 스승의 깨우침을 넘어서지 못하면 그 무예는 사장될 뿐이다.
졸탁동시(猝啄同詩)란 말이 있다. 달결속의 병아리가 나오려고 껍질을 깨뜨리는 순간 어미 닭도 같은 시간에 새끼 병아리의
탄생을 돕는다는 뜻이다. 이렇듯 무형의 힘은 하나의 정신으로 통하고 새로운 몸이 되어 탄생한다. 무예의 가치도 이러한
과정으로 철저하게 인습 된다는 것이다.
무예자는 옛
스승으로부터 습득한 무예를 수련할 때마다
감읍(感泣)하였다. 그 가치를 숭상하고 널리 알리고자 끊임없이 수련한다. 한분야의 전통이란 스승과 제자가 직접 얼굴을 맞대며 수수면전(授受面傳)하는 과정이다. 이들 사이에는 어떠한
거짓도 없이 무형(無形)의 가치만 번득이며 전달된다.
수 백 개의 도장 지도자들이 경향 각지에서 수련생들을
지도하고 있는 시점에서 검무예 해동검도의 역사적 뿌리와
정통성을 바로 잡고자 한다. 그러므로 미래 발전적 차원으로
오늘의 기반을 탄탄히 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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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동검도는 나한일 총재(현재 (사)한국해동검도협회 총재)에
의해 창출된 현재적 의미의 검무예이다. 먼저 그의 스승과
연원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도일(道一) 나한일(羅漢一) 총재는 서라벌 고교 시절부터 원광(圓光) 김창식 선생으로부터
검무예 "신검도"를 수련하였다.
원광 김창식 선생은 1965년 숭산 대선사(崇山大禪士:당시
화계사 주지)로부터 선(禪)을 통한 무예심법(武藝心法)을
지도 받았다. 화계사 선방(禪房), 북한산, 삼각산 등지에서
맹렬히 용맹정진하던 중 북한산 진달래 능선 토굴에서 검법을
선통(禪通)의 깨우침으로 창출하니 이 땅에 검무예 문화가
정착하게 된 초석이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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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손 즉 바른 손으로만 검을 잡고 수련하는 외수검법 이라는
말이다. 이 무예의 특징은 검을 통하여 마음과 행동이 바르게
되므로써 자유로울 수 있다는 가르침을 준다.
다시 말해 마음의 생각과 행동의 실천이 일치될 때 자유롭고
즐거운 인생이 된다는 뜻이다. 검법 행위가 인간의 몸을 떠나
존재할 수 없듯이 몸 안에는 생각의 주체인 마음이 있어 밖으로 표출되고 행위와 일치될 때 형성되는 자유롭고 엄격한 무예체계이다.
검법 내용은 기본동작과 격검, 선방검법, 선공검법, 와우검법,
몽복검법 등이 있다. 1968.5~1975년까지 "대한 불교 조계종
김검도 호법총관"이란 도장 이름으로 개관했는데 이 때 나한일, 신이철 등의 수련생이 제자로 수련한다. 이들은 화계사에서
무예 수련과 참선 그리고 여러 스님들과의 울력에서도
용맹전진의 모습이 대견했던지 숭산 대선사는 나한일
학생에게는 도일(道一), 신이철 학생에게는 도성(道星) 호를
내려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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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 원광 김창식 선생이 포교를 위해 도미(渡美)하므로써
당시 나한일 사범(중앙대)은 도장을 인계받아 지도하다가
군입대 한다. 1978년 나한일 사범은 군제대 후 CBS(기독교방송) 성우로 입사하면서 방송국내 지인들에게 검도를 지도하면서
고려대, 동국대, 서울대에 검도 동아리 결성 운동을 가르친다.
1980년에 접어들면서 현진영화사의 후원으로 서초동에 검도관을 개관하는데 이때부터 나한일 관장은 전총무예에 대한 깊은
성찰의 시간을 갖는다. 따라서 전통을 표방하는 무예를
찾아가 직접 배우게 된다. 국선도, 정도술, 기천문, 불무도
등을 답습한다. 이때 "무예도보통지". "무비지". "기효신서"를
처음 접하게 되며 한 손만으로 검을 잡고 수련하는 심검도
무술체계에서 자기무예에 대한 깊은 의구심을 갖게 된다.
따라서 빠르기와 정교함은 있지만 한 쪽 팔만을 쓰는 한계와
강력한 힘의 집중은 두 손을 활용하는 검법에 비교할 바가
아니였다. 두손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검법 체계는 균형잡힌
신체 발달과 힘의 집중 등에서 탁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전통을 표방하는 무예 정서와 심검도등을 제 정립하여 새로운
무예체계인 해동검법을 창출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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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는 해동검도를 얼마나 쉽고 편하게 수련하고 있는가
선배들의 처절한 전통 인식의 태도와 한국에서의 새로운 검도
문화에 대한 희구(希求) 정신은 다시 평가해야 마땅하다 하겠다. 때 마침 1983년말 故 최태민 목사(당시 검도장 회원)가 우리나라 역사적 강역적 차원에서의 "해동검도(海東劍道)"란 검도 이름을 명명하여 나한일 관장에게 제시하였다. 하여 나한일 관장은
여태까지 연구한 검법체계를 종합하여
1984.
4월"海東劍法槪論"(도서출판 보림)를 저술하여 해동검법을 학문적 기술로써 진검의 현대적 실재성으로 확립한 것이며
"해동검도"를 이땅에서 최초로 탄생시킨 일대 사건이 되었다.
다시말해 오늘날 우리가 수련하는 "해동검도"와 수련 내용
즉
해동검법이 최초로 탄생한 것이다. 해동검도 운동 체계는
두 손으로 하나의 검을 잡고 수련하는 쌍수검법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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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 만물에 인간의 심성을 투과한 무적형상(武的形象)이다.
따라서 천지(天地), 사방(東西南北)이라는 육합(六合)세계를
형상화(形象化)하여 우리 몸에 그려 담는다는 뜻이다.
무적(武的)이란 찌르고, 막고 베기의 과단성(果斷性)이고
형(形)이란 자연 물상의 질료로서 현상계에 보이는 물질
세계를 말하며
상(象)이란 인간의 이념과 사상을 형이상학적
기호체계로 만드는 무예 법칙을 뜻한다.
그러므로 형(形)이라는 자연계(自然界)와 상(象)이라는
인체계(人體界)를 다시 무적(武的)으로 형상화(形象化)한
검무예이다.
<해동검도 검법 기본동작>
1. 빛광(光)자 베기
2. 대도견적세(大蹈見賊勢)
3. 금계독립팔상세(金鷄獨立八像勢)
4. 자연견적서(自然見賊勢)
5. 소도견적서(小蹈見賊勢)
6. 조천세(朝天勢)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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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롭게 창출된 해동검도는 위의 기본 동작을 포함한 쌍수검법, 예도검법, 심상검법, 장백검법 등이 있다. 이들 해동검법은
"海東劍法槪論"에 실어 출간하므로써 한국 검도사에 길이
남을 해동검도가 되었다. 따라서 (사)한국 해동검도협회에서는 이 책을 출간된 1984. 4. 15일을 해동검도의 출발로 선포하였다. 이로써 해동검도는 이론과 실재성이 조합된 검무예로써
이땅에 뿌리를 내린다. 1993년에 사회단체 한국해동검도협회가 등록되고 1994년 2월 10년만에 "해동검도"를 저술(오정교 연구원장. 한구광고연구원)한다. 1995년 1월은 한국해동검도 협회
소속 60여명의 지도자가 생활체육지도자 3급 자겨증 검도종목을 문화체육부로 부터 취득하였으며, 1996. 4월 "해동검도총서"
저술(오정교 연구원장, 도서출판 광연)하고 1996. 10월부터
시작된
해동검도 전국선수권대회는 지금까지 매년 10월에
개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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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 3월은 해동검도 관련 상표 및 서비스표 지적 재산권을
확보하는데 그 내용을 보면 빛광자베기, 대도견적세,
금계독립팔상세, 자연견적세, 소도견적세, 조천세 등과 같은
깁본자세와 해동검도, 쌍수검법, 심상검법, 예도검법, 외수검법, 쌍검법 등과 같은 검법을 총 망라한 것이다.
따라서 (사)한국해동검도 협회 소속 동장 이외 그 누구도 이러한 검법체계를 도용(盜用)하여 이름과 동작을 쓸 수 없게 되었다.
19993 1월 "해동검도 교본" 저술(강영욱 부회장, 정신세계사)
출판되었고 2001 4월 해동검도 중앙협호가 건립
(현 협회장소:신당동 소재)된다. 2002. 2월 사단법인
한국해동검도협회가 새롭게 발전되면서 같은해 4월 해동검도
지도자 세미나(용인 숙명여대 연수원)를 매년 개최하고 있다.
2003. 6월 "검무예" 저술(오정교 연수원장. 도서출판 진한도서)
하며 해동검도를 학문적으로 보다 튼튼한 반석 위에 올려 놓고 있다.
해동검도는 나한일 총재에 의해 창출된 전대미문(前代未聞)의 검무예이다. 검을 한손으로만 잡고 수련하던 스승 김창식 선생의 외수검법 심검도를 포함하여 두 손으로 하나의 검을 잡고
수련하는 쌍수검법을 창출하였다. 강력한 힘과 절묘한 세기에
박진감 넘치는 검세는 한국인의 정서에 매우 효과적으로 맞아
떨어진 검무예가 되었다. 이들 검법은 매우 독창적일 뿐만
아니라 조잡하지도 단순하지도 않은 고결한 해동검도가 되었다.
해동검도가 열악한 무예 토양에서 자생하기란 매우 힘든 과정을 거쳐 왔다. 선배들의 전통인식에 대한 뼈를 깍는 듯한 처절한
자기 성찰이 없었다면 지금의 해동검도는 있을 수 없었다.
이땅에서 자생한 검무예로써 한국적 정서에 부합(符合)된
해동검도를 선배들이 그랬듯이 후배들이 소중한 무예 문화
유산으로 더욱 더욱 발전시켜야 하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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